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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덕스님─부처님 은덕으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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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116회 작성일 14-06-04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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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 은덕으로 산다
                       -광덕 스님 - 월간 佛光(2004년 7월호)간 불광(佛光)

언제나 변함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
그러니까 ‘이것이다’ 하고 한 가지 일에 꼭 국집해 있는 사람,
그런 무지한 상태에 있는 사람은 무상(無常)의 도리를 모릅니다.
이 몸뚱이도 몇 가지 화합물이고, 이 세간도 화합물이고,
천지는 변해가는 과정입니다.

시간시간 흘러가고 시간시간 바뀌어가고 모두는 변해가고 흘러갑니다.
무엇 하나 가만히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땅이 영원하고,
내 행복이 영원하고, 내 즐거움이 영원하리라’ 하고 딱 붙잡고 있는 사람,
그것은 그릇된 병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무상의 도를 일러줍니다.
“네가 보고 있는 강물은 여기 도도히 흐르고 있다.
강은 거기 있는지 몰라도 물은 잠시도 머물러 있지 않고 흐르고 있는 물이다.”
여기에 흐르면서 흐르지 않는 도리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흐르고 있고 무상하다는 것을 모르고 자기 아집에 사로잡힌 사람에게는
아(我)가 공(空)하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마침내 아에 집착해 있으면 고통이 돌아온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 형제들 신앙수기를 읽어보면 그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집착을 떼어라 하는 법문을 배워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그 고질병을 고쳐버렸다.
도저히 못 고치던 병들이 그 마음 가운데 쥐고 있던 고집과 원망을 떼어버리고 슬픈 생각을 놔버렸을 때 자기의 병이 나아버렸다.” 하는 그런 얘기가 신앙수기에 종종 나옵니다마는 아의 집착이 마침내 고통을 불러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로는 아라고 할 만한 이 물질적, 형상적인 것은 (화합물이니까) 하나도 없다는 것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번뇌는 원래 없는 것 법화경에 화택이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 세간은 타오르는 불집과 같다. 중생 사바세계는 와글와글 불이 활활 타오르는 풀숲과 같다.
모두 허물어지고 변해가는 과정이다. 어느 것 하나 허물어지지 않고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이 세간도 그렇고 재산도 그렇고 명예도 그렇고 모두가 그렇다.” 그것을 알게 하셔서 그 화택에서 벗어나 불타지 아니하는 청정한 국토에 나오도록 부처님은 인도하십니다. 얼마 전에 불광 형제가 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이제 알았습니다.” “무엇을 알았습니까?” “생사가 없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여태까지 몰랐습니다. 이제 알고 보니까 번뇌가 없다고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그 분의 진지한 자세에 참으로 마음 가운데 존경심이 생겼습니다.
우리 불광 가족으로 그 분이 젊은 사람이든 아니든 진지한 부처님 법문 속에서 생사가 없다는 뜻을 듣고도 몰랐는데, 생각하고 생각해서 마침내 번뇌가 끊어진 것,
그것이 생사가 없는 것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좋다는 것입니다.
사실 번뇌가 끊긴 것이 끊어져서 번뇌가 끊어진 것이 아니라 번뇌가 원래로 없는 것입니다. 원래로 없는 것을 깨달으면 있는 즉시로 생사를 초월한 것입니다.

반야바라밀이 바로 그것입니다. 반야심경이 가르치는 법문이 바로 그것입니다.
부처님은 성인 가운데 성인 “부처님은 성인 가운데 성인이고 세간의 아버지다.
모든 사람은 모두 불자다. 저들은 세간락에 빠져서 재앙을 보는 지혜가 없다.
그래서 저들의 세간은 불안과 괴로움이 넘치고 노병사의 불꽃이 치성하다. 저들이 가르침을 믿지 않는 것은 눈앞의 욕심에 끄달리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중생을 평화로 인도하고 진실 행복을 베풀기 위하여 세간에 나타나신 것이다. 부처님의 말씀은 믿음으로써 알게 되는 것이다. 지식으로 이르는 것이 아니다.”
어저께도 김영태 교수님이 “부처님은 천중천이다.” 하는 말씀을 했습니다. 하늘 가운데 다시 하늘입니다. 최상의 하늘입니다. 하느님이 최고이며 하늘이 최고라며 옛날 인도에는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3,000년 전 인도 사람들처럼 지금도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늘 가운데 하늘이 부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성인 가운데 성인, 천중천 성중성, 부처님은 그러하십니다.

이 세간 미혹한 중생들이 어둠에 쌓이고 괴로움에 빠져 있을 때 그를 건지시고자 하시는 자비하신 아버지이십니다. 세간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화경에는 “내가 이 중생들을 다 건진다”는 말씀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부처님이 천중천이시고 성중성이신 부처님입니다. 중생을 건지시는 아버지, 아버지가 남겨주시고 건져주시는 방법이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입니다.

부처님법은 감로입니다. 생사가 없는 도리를 주는 약을 감로라고 합니다. 이 감로는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데 있습니다. 믿고 행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 은덕으로 산다 부끄러운 얘기지마는 고백을 합니다.
저는 불광법회를 하고 싶어서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광에서 하는 일들이 제 뜻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를 아시는 형제들은 제가 원래 선방에서 참선이나 하고 살던 사람으로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다가 책 좀 읽었다고 해서 종단에 징발되어 가지고 10년 가까이 종단 장내에 나와서 종단행정에 관여했던 것을 아실 겁니다. 그러다가 그래도 틈만 있으면 팽개치고 산으로 달아났습니다. 꿩이 생각은 콩밭에 가 있다더니 도시에 나와 있으면서도 산중으로 달아나서 참선만 하는 생각을 하고 살았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어느날 밥을 잘 먹고 잤는데 아침에 일어났더니 창자에 구멍이 뚫려져 버렸어요. 그 다음에 창자가 뚫려져서 수술한다고 그런 것이 창자만 끊은 것이 아니라 엉뚱하게 위까지 잘라버렸습니다. 십이지장 잘라내고 그 다음에 몇 년 지나서 담낭을 또 잘라내버렸어요.
그리고 그 밖에 몇 개 부속을 함께 잘라버렸습니다. 이러다 보니까 아무리 산에 가서 살 생각으로 가득하더라도 가지 못하고 대각사 근처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월간 「불광」을 만들게 되었고, 우리 형제들과 가까이 만나게 되고, 불광 형제들을 만나게 되어서 어쩌다 보니까 이렇게 여러 형제들과 더불어 이렇게 살게 되어버렸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제가 솔직히 큰 뜻을 세워 “불광법회를 만들어서 한국불교의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한국불교가 빛나는 세계의 새로운 선도자가 되도록 하리라” 하는 원을 가지고 불광법회를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그 뜻은 30대부터 가지고 있었고 제가 선방에 와서 몇 년 있다가 불법에 대해서 조그마한 믿음이 생기고부터 ‘이런 길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나서, 세계 평화의 문제라든가 인류의 행복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어떻게 어떻게 되어야겠다’ 하고 연구를 하고 구상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지만 언제든지 산에서 떠날 생각은 못했습니다. 참선방에 앉아서 남 돕는 생각을 떠나지 못하고 살았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연히 소심이라는 큰스님이 계셨는데 그 어른의 행적을 조사해서 그 어른의 비석을 세워 드리려고 그 행적 조사 하려다가 종단 전면에 끌려나와 가지고 결국 10년을 행정 분야에 관여하게 되고 그 끝에는 부속을 떼어내고 하다 보니까, 생각한 것을 금생에는 못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 법회를 하게 되고 형제들과 만나게 됐습니다. ‘부처님의 법은 내가 믿고 있는 것 같아도 부처님의 크신 은덕이다’ 하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불광법회가 된 것도 부처님의 은덕이고 월간 「불광」이 그 동안에 백 몇 십만 부가 나올 수 있었던 것도 부처님 은덕이고 제가 불법을 만난 것은 더 말할 것 없이 부처님의 은덕입니다. 병을 만나 불법을 만나고 저는 병이 안 났더라면 불법을 몰랐을 것입니다.
병을 안 만났으면 불법을 못 만났습니다. 병이 나서 쉬게 되니까 어떤 사람이 “참선방에 가서 참선 공부를 해라. 참선 구경을 해라. 사내자식이 뭐가 되려고 그러면 참선 한번 좀 구경을 해야 한다.” 그렇게 꼬이는 바람에 속아서 한 석 달쯤 선방구경 간다고 간 것이 삼십 년 사십 년입니다. 인생 다 갔습니다.
그런데 그 병이 나를 인도해 준 것입니다. 불법을 인도해줬을 뿐 아니라 작년에 아파서 누워서 생각해보니 무수한 고비들이 전부 나를 인도해 주시는 부처님의 자비였습니다. 지금 생각에 남는 것은, 이제까지는 내가 노력하고 내가 선택하고 내가 결단해서 내일을 개척해 간다 하고 생각할 때가 있었는데, 내 마음 가운데는 온전히 모두가 부처님의 은덕이다, 부처님의 은혜와 부처님의 위신력이다, 부처님 자비의 인도하심이다, 그 생각뿐입니다.

저의 경우로 말하면 일생 동안 참 많이 아팠습니다. 선방에서 참선하면서도 많이 아팠습니다.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고통을 겪었지마는 고통으로 해서 내가 죽었는가. 아닙니다. 고통을 겪는 가운데 저는 오늘까지 왔습니다. 사실인즉슨 부처님의 지극하신 자비가 지극하신 방편이 저를 오늘로 인도해주신 겁니다.
일체 부처님의 공덕입니다. 어떤 사람은 불행하게 저를 살았다고 할 겁니다. 어쩌면 저도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그야말로 세상을 삼킬 만한 꿈을 가지고 있어도 아직 착수도 못하고 있는 것이 많으니 아마 불행하다 하실 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표준으로 저를 불행하다 하실 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부처님의 크신 은덕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믿게 되었습니다.

지금 저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형제들 모두가 누구나가 행이든지 불행이든지 ‘부처님의 은덕으로 산다. 부처님의 은덕이다. 부처님의 큰 지혜와 큰 자비와 큰 위신력이 내 생명을 깨우치게 하시려고 지금 끊임없이 작용하고 계시다. 부처님의 은덕이다’ 하는 생각을 항상 가졌으면 합니다.
괴로울 때나 즐거울 때나 성공했을 때나 지금 실패한 듯이 보이거나 어느 때라도 잘 되어 가는 길이고, ‘부처님의 공덕으로 지금 되어간다.’ 이렇게 확신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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